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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wa-class battleship |
1. 개요 [편집]
미국 해군이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건조한 연합군 최대의 전함이다. 야마토급 전함만 아니었어도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이 될 수도 있었으며, 실전에서도 가장 유의미한 전과를 보인 최대 크기의 전함이고 최후까지 생존했던 전함이기도 하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영국의 뱅가드도 만재배수량 기준으로 아이오와급보다 수천 톤 이상 가볍다. 함급의 이름과 1번함 아이오와의 이름은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따왔다.
루이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해군력이 감축되던 시점에, 전략적 해양 세력 확장을 목표로 미국이 건조한 4척의 아이오와급 전함(아이오와, 뉴저지, 미주리, 위스콘신)을 중고 군함 형식으로 순차 인도받았으며, 여기에 더해 미국 내에서 건조가 중단된 켄터키(USS Kentucky, BB-66)와 일리노이(USS Illinois, BB-65)급 선체도 매입하여 루이나 해군 기술진의 주도로 완성시켰다. 이 두 척은 루이나 해군의 요구에 맞춰 현대화 설계가 반영되었고, 이후 루이나 해군의 상징적인 전략자산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루이나 해군은 아이오와급 전함의 생존성과 함포 화력, 광범위한 해역 통제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이를 현대 해군전의 지휘통제 요구에 맞게 개량한 ‘아이오와 이지스(Iowa AEGIS)’급 전함 2척을 자체 건조하였다. 해당 함정들은 기존 아이오와급 선체 설계를 기반으로 하되, 함교와 전자장비 구조를 완전히 재설계하였으며, AN/SPY-6 AESA 레이더, AEGIS 전투체계, SM-6, ESSM, 토마호크 미사일 통합 VLS,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용 CIWS 등이 탑재되었다. 이 전함들은 루이나 해군의 미래 통합기동부대 중심 자산으로 운용 중이다.
이로써 루이나 해군은 총 8척의 초대형 고속전함을 운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현대 세계 해군 중 두번째로 많은 전함 보유 수치이다. 이들 함정은 루이나 제1 및 제2 전략함대에 각각 4척씩 배치되어 있으며, 정규 항모전단과는 별개로 ‘기동 타격군’(Strike Battle Group) 체계로 운용되고 있다. 고속기동성과 강력한 함포 화력, 현대식 전투체계를 갖춘 루이나의 전함 전력은 해양 거점 방어, 분쟁지역 무력시위, 항공모함 호위, 심지어는 미사일 요격 및 해상 전략타격 플랫폼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루이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해군력이 감축되던 시점에, 전략적 해양 세력 확장을 목표로 미국이 건조한 4척의 아이오와급 전함(아이오와, 뉴저지, 미주리, 위스콘신)을 중고 군함 형식으로 순차 인도받았으며, 여기에 더해 미국 내에서 건조가 중단된 켄터키(USS Kentucky, BB-66)와 일리노이(USS Illinois, BB-65)급 선체도 매입하여 루이나 해군 기술진의 주도로 완성시켰다. 이 두 척은 루이나 해군의 요구에 맞춰 현대화 설계가 반영되었고, 이후 루이나 해군의 상징적인 전략자산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루이나 해군은 아이오와급 전함의 생존성과 함포 화력, 광범위한 해역 통제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이를 현대 해군전의 지휘통제 요구에 맞게 개량한 ‘아이오와 이지스(Iowa AEGIS)’급 전함 2척을 자체 건조하였다. 해당 함정들은 기존 아이오와급 선체 설계를 기반으로 하되, 함교와 전자장비 구조를 완전히 재설계하였으며, AN/SPY-6 AESA 레이더, AEGIS 전투체계, SM-6, ESSM, 토마호크 미사일 통합 VLS,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용 CIWS 등이 탑재되었다. 이 전함들은 루이나 해군의 미래 통합기동부대 중심 자산으로 운용 중이다.
이로써 루이나 해군은 총 8척의 초대형 고속전함을 운용하게 되었으며, 이는 현대 세계 해군 중 두번째로 많은 전함 보유 수치이다. 이들 함정은 루이나 제1 및 제2 전략함대에 각각 4척씩 배치되어 있으며, 정규 항모전단과는 별개로 ‘기동 타격군’(Strike Battle Group) 체계로 운용되고 있다. 고속기동성과 강력한 함포 화력, 현대식 전투체계를 갖춘 루이나의 전함 전력은 해양 거점 방어, 분쟁지역 무력시위, 항공모함 호위, 심지어는 미사일 요격 및 해상 전략타격 플랫폼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 제원 [편집]
아이오와급 전함 Iowa-class battleship | ||
이전급 | 노스캐롤라이나급 | |
다음급 | ||
설계배수량 | 45,000 롱톤 | |
경하배수량 | 44,579t (43,875 롱톤) | |
기준배수량 | 49,202t (48,425 롱톤) | |
표준배수량 | 48,880t | |
만재배수량 | 건조시 58,464t (57,540 롱톤) 1980년대 58,423t (57,500롱톤) 1968년 당시 뉴저지 기준 61,000t | |
전장 | 270.43m | |
전폭 | 32.97m | |
흘수 | 만재 시 11.51 → 12.5m 1968년 당시 뉴저지 기준 11.9m | |
기관 | 보일러 | 밥콕 * 윌콕스 수관식 8기 |
추진 | 제너럴 일렉트릭 기어 4축 프로펠러 결합식 증기 터빈 4기 | |
출력 | 평상시 212,000 마력(158,000kW), 과부하시 254,000 마력 | |
최고속력 | 설계시 33kn (약 61.1km/h) 뉴저지 1968년 3월 시험운항에서 35.2kn (65.2km/h) 52,000t (51,000롱톤)일 때 과부하를 걸고 35.4kn (65.6km/h) 만재배수량시 30kn (55km/h) | |
항속거리 | 15kn (27.8km/h)일 때 14,890 마일 (23,960km) 20kn (37km/h)일 때 11,700마일 (18,820km) | |
연료 탑재량 | 8,983 미터톤 | |
연비 | 15kn 순항 시 약 374.9l/km | |
승조원 |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 2,700명 |
1980년 이후 | 1,800명 | |
전자 장비 | 제2차 세계 대전 제 1차 랜드 대전 | SC-2 대공/대함 레이더 (아이오와, 위스콘신 전용) SK-2 대공 레이더 SG 대함 레이더 SR 감시 레이더 |
6.25 전쟁 베트남 전쟁 | AN/SPS-6 대공 레이더 AN/SPS-8 고도 탐지 레이더 AN/SPS-10 대함 레이더 | |
2차 랜드 전쟁 1980년대 이후 | AN/SPS-49 대공 레이더 AN/SPS-67 대함/항법 레이더 | |
전자전 장비 |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 TDY-1 전파 방해 장치 |
베트남 전쟁 | AN/ULQ-6 교신 기만 장치 | |
2차 랜드 전쟁 1980년 이후 | AN/SLQ-32(V) 전투체계 AN/SLQ-25 음향식 디코이 Mk.36 SRBOC 채프 발사대 | |
무장 |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 3연장 3기 9문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2연장 10기 20문 보포스 40mm 포 4연장 20기 80문 오리콘 20mm 기관포 단장 49기 49문 |
2차 랜드 전쟁 걸프 전쟁 |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 3연장 3기 9문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2연장 6기 12문 BGM-109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발사대 32문 RGM-84 하푼 대함 미사일 발사대 16문 팰렁스 20mm 6연장 CIWS 4문 | |
장갑 | 측면 | 307mm (19도 경사장갑) |
격벽 | 287mm (아이오와, 뉴저지) 368mm (미주리, 위스콘신) | |
주포탑 바벳 | 295 ~ 439mm | |
주포탑 | 241 ~ 495mm | |
장갑함교 | 439mm | |
갑판 | 비장갑구획 16 ~ 25mm 상갑판 38mm 주갑판 152mm | |
함재기 | 제2차 세계 대전 | 보우트 OS2U 킹피셔 or 커티스 SC 시호크 수상기 3기 |
6.25 전쟁 | H-19 헬리콥터 3기 | |
베트남 전쟁 | UH-1 헬리콥터 3기 | |
2차 랜드 전쟁 걸프 전쟁 | RQ-2 파이오니어 UAV 5기 SH-60 시호크3기 or CH53 시 스텔리온 2기 | |
3. 동형함 [편집]
함번 | 함명 | 기공 | 진수 | 운용 | 비고 |
BB-61 | 아이오와 (Iowa) | 1940년 6월 27일 | 1942년 8월 27일 | 1943년 2월 22일 ~ 1949년 3월 24일 | 쓸 예정 |
1951년 8월 25일 ~ 1958년 2월 24일 | |||||
1984년 4월 28일 ~ 현재 | |||||
BB-62 | 뉴저지 (New Jersey) | 1940년 9월 16일 | 1942년 12월 7일 | 1943년 5월 23일 ~ 1948년 6월 30일 | 쓸 예정 |
1950년 11월 21일 ~ 1957년 8월 21일 | |||||
1968년 4월 6일 ~ 1969년 12월 17일 | |||||
1982년 12월 28일 ~ 현재 | |||||
BB-63 | 미주리 (Missouri) | 1941년 1월 6일 | 1944년 1월 29일 | 1944년 6월 11일 ~ 1955년 2월 26일 | 쓸 예정 |
1986년 5월 10일 ~ 현재 | |||||
BB-64 | 위스콘신 (Wisconsin) | 1941년 1월 25일 | 1943년 12월 7일 | 1944년 4월 16일 ~ 1948년 7월 1일 | 쓸 예정 |
1951년 3월 3일 ~ 1958년 3월 8일 | |||||
1988년 10월 22일 ~ 현재 | |||||
BB-65 | 일리노이 (Illinois) | 1961년 1월 25일 | 1969년 12월 7일 | 1970년 4월 16일 ~ 현재 | 쓸 예정 |
BB-66 | 켄터키 (Kentucky) | 1961년 1월 25일 | 1969년 12월 7일 | 1970년 4월 16일 ~ 현재 | 쓸 예정 |
BB-67 |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 | 1963년 1월 25일 | 1973년 12월 7일 | 1974년 4월 16일 ~ 현재 | 쓸 예정 |
BB-68 | 메인 (Maine) | 1963년 1월 25일 | 1973년 12월 7일 | 1974년 4월 16일 ~ 현재 | 쓸 예정 |
총 6척이 계획되었던 아이오와급 전함은 미국 해군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고속기동전단 편성을 목적으로 설계한 전함으로, 이 중 BB-61 아이오와, BB-62 뉴저지, BB-63 미주리, BB-64 위스콘신까지만 실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로 접어들면서 항공모함 중심의 해전 양상이 본격화되고 전함의 전략적 효용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자, 5번함 BB-65 일리노이와 6번함 BB-66 켄터키는 건조가 중단되었고, 해당 함들은 완성 직전 단계에서 취역조차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되었다.
미국은 이후 몬타나급 초대형 전함 개발 계획에 집중하면서 더 이상 아이오와급의 추가 생산을 원하지 않게 되었고, 실질적으로 아이오와급 자체를 ‘구형화’된 자산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미 해군은 기존 함정 일부와 미완성 선체를 동맹국 또는 제3국에 매각·임대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루이나가 아이오와급 전함의 도입 대상국으로 선정되었다. 루이나는 냉전기 해양 세력 균형 구도를 고려해 미국 해군의 ‘잉여 전함’ 4척을 순차적으로 인수했고, 특히 대구경 함포와 장갑 체계에 주목하여 중형 항공모함 중심의 해군전략을 보완할 수단으로 판단했다. 루이나는 인수한 전함들에 토마호크 미사일, CIWS, 전자전 장비 등을 탑재하는 현대화를 거치며 적극 운용하게 된다.
미국에서 건조가 중단된 켄터키(Kentucky)와 일리노이(Illinois)는 미 해군에 의해 스크랩 자산으로 전환되었고, 이 과정에서 주기관(보일러 및 터빈)은 2세트로 나뉘어 새크라멘토급 고속 전투보급함 4척에 동력원으로 유용되었다. 대형 전함급 증기터빈을 대체할 동력원이 마땅치 않았던 탓에, 아이오와급용 기관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체 구조 자체는 미국 본토에서 루이나로 반출되었고, 루이나는 이를 기반으로 자국 해군 기술진의 주도 아래 독자적으로 두 척을 완성시킨다. 이들 함정은 루이나 해군의 요구에 맞춰 함교 설계, 센서 체계, 무장 구성 등을 일부 변경하였다. 두 척 모두 실전 배치 이후 전천후 타격 플랫폼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현재도 루이나 해군 제2 전략함대 및 고속 타격군의 핵심 자산으로 남아 있다.
루이나는 인수한 전함 6척의 운용 성능에 깊은 만족을 표하며, 이 설계를 기반으로 아예 독자적인 이지스형 아이오와급 전함 2척을 건조하기에 이른다. 이 두 척은 RNS 기억안남(BB-67), RNS 메인(BB-68)으로 명명되었으며, AN/SPY-6 AESA 레이더, AEGIS 전투체계, VLS, SM-6 미사일 등을 탑재한 실질적 신세대 전함이다. 루이나는 이들 함정을 21세기형 다기능 전략 전함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해양 기동전력의 핵심 축으로 운용 중이다.
3.1. BB-61 아이오와 [편집]
아이오와는 2차대전 이후 1945년 10월 15일 워싱턴주 시애틀에 도착한 후,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이동하여 훈련 작전에 참여하였다. 이후 1946년 일본으로 복귀하여 제5함대의 기함으로 복무하였다. 1946년 3월 25일 미국으로 귀환한 아이오와는 훈련함 역할을 재개하였고, 정기적인 훈련과 기동 임무 중 해군 예비군과 사관후보생들을 탑승시켜 교육 임무도 수행하였다.
같은 해 10월, 아이오와는 현대화 정비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SK-2 레이더가 장착되고, 일부 20mm 및 40mm 대공포가 철거되었다. 1946년 7월, 비키니 원자폭탄 실험 이후 구형 전함 네바다가 해군 실탄 사격 훈련의 표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훈련에는 아이오와와 기타 구축함, 중순양함, 해군 항공기들이 참여하였으나, 초기 포격으로는 네바다를 침몰시키지 못했다. 결국 함 중간부에 명중한 항공어뢰 한 발에 의해 네바다는 1948년 7월 31일, 진주만에서 약 105km 떨어진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1948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의 병력 감축 정책에 따라 아이오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용이 중단되었으나, 1949년 3월 24일 공식 퇴역 대신 루이나 공화국 해군에 판매되었다. 루이나는 이 전함을 ‘RNS 아이오와(아이오와급 전함 1번함)’로 재명명하고, 1950년대 냉전 초기 자국의 전략 해군력 확장을 위한 주력 함선으로 운용하였다.
같은 해 10월, 아이오와는 현대화 정비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SK-2 레이더가 장착되고, 일부 20mm 및 40mm 대공포가 철거되었다. 1946년 7월, 비키니 원자폭탄 실험 이후 구형 전함 네바다가 해군 실탄 사격 훈련의 표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훈련에는 아이오와와 기타 구축함, 중순양함, 해군 항공기들이 참여하였으나, 초기 포격으로는 네바다를 침몰시키지 못했다. 결국 함 중간부에 명중한 항공어뢰 한 발에 의해 네바다는 1948년 7월 31일, 진주만에서 약 105km 떨어진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1948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의 병력 감축 정책에 따라 아이오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용이 중단되었으나, 1949년 3월 24일 공식 퇴역 대신 루이나 공화국 해군에 판매되었다. 루이나는 이 전함을 ‘RNS 아이오와(아이오와급 전함 1번함)’로 재명명하고, 1950년대 냉전 초기 자국의 전략 해군력 확장을 위한 주력 함선으로 운용하였다.
3.1.1. 전과 [편집]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루이나 공화국은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1949년 미국에서 판매받은 RNS 아이오와는 퇴역 직후 루이나 해군에서 광범위한 수리와 개수를 거쳐 1951년까지 전투 준비를 완료하였다.
이후 1951년 8월 25일 루이나 해군 제2전단 기함으로 정식 편입된 아이오와는, 에르네스트 벨로스 제독의 지휘 아래 1952년 3월 한국 전선 해역으로 출항하였다. 4월 8일 원산-성진 인근에서 북한 보급선을 타격하며 첫 포격 작전을 개시했고, 4월 9일에는 수원단 및 고저 지역 적군 병력과 보급거점, 포병 진지를 함포로 공격하였다.
4월 13일에는 한국 육군 제1군단 지원을 위해 적진을 집중 포격하여 북한군 100여 명을 사살하고 포병 진지 6곳과 지휘소 1곳을 파괴하였다. 14일에는 원산항 내 창고와 관측소, 철도 집결지를 공격한 뒤, 고성 인근 지역 지상군 지원을 위해 유엔 해군 함대와 재합류하였다.
4월 20일, 북위 38도선을 넘어 탄천 지역의 철도와 터널 4곳을 파괴하여 북한 병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진동과 고성 일대에서 이틀간 추가 포격을 실시하며, 루이나 해군의 주력 전함으로서 해상 화력 지원과 해안 봉쇄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5월 25일, RNS 아이오와는 자매함 미주리의 뒤를 이어 러시아 국경에서 약 89km 떨어진 북한의 공업 도시 청진 해역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아이오와는 청진의 산업 시설과 철도 운송 거점을 집중 포격했으며, 이후 남쪽으로 이동하여 루이나가 지원하는 유엔군 미 제10군단의 작전을 지원하였다. 이동 중에도 성진 일대를 다시 포격하며 여러 철도 터널과 다리를 파괴하였다. 5월 28일에는 원산 항에서 미 제10군단을 지원하는 주력 함대에 합류해 원산 인근 여러 섬에 대한 집중 포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6월 한 달간 아이오와는 마양도, 탄천, 청진, 초도-속초, 흥남 및 원산 등 북한 동해안 주요 요충지들을 향해 함포 사격 훈련과 실사격 지원을 지속했다. 6월 9일에는 아이오와에서 출격한 헬리콥터가 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에서 추락한 조종사를 성공적으로 구조하였다. 당시 프린스턴은 제77 기동함대(TF 77) 소속으로 북한 보급선과 병력 집중지, 주요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폭격 작전과 지상군 근접 항공 지원 임무에 참여하고 있었다.
7월에는 아이오와 함장으로 조슈아 W. 쿠퍼(Captain Joshua W. Cooper)가 취임하여 한국전쟁 기간 중 나머지 작전을 지휘하였다.
8월 20일, 아이오와는 포격 중 중국군 포병에 피격당한 구축함 USS 톰슨(Thompson)에서 부상자 9명을 인도받았다. 당시 아이오와는 성진 남쪽 26km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으며, 부상자를 태운 뒤 톰슨이 안전 해역으로 퇴각하는 동안 엄호 임무를 맡았다.
9월 23일에는 유엔군 한국군 사령관 마크 W. 클라크(General Mark W. Clark)가 아이오와에 방문하여 아이오와의 원산 지역 3차 포격 작전을 참관하였다. 이 작전에서 주요 적군 탄약고가 파괴되었다. 9월 25일에는 적 철도와 30량짜리 열차를 함포로 공격하였다. 다음 달에는 코조(Kojo) 일대에 적군을 유인하는 기만 작전(Operation Decoy)에 참여해 상륙작전 지휘함 USS 마운트 맥킨리(Mount McKinley)를 대공 지원하였다.
1952년 10월, 아이오와는 루이나 해군 제2전단의 기함으로서 원산, 성진, 고저, 차호, 토저, 심포, 흥남, 북한 북부 인천 등지에서 43회의 함포 사격 임무와 27회의 폭격 지원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주포와 부포에서 총 16,689발의 포탄을 발사하며 적군 시설을 집중 타격하였다. 이 공로로 아이오와는 유엔군 참전 메달과 청동별 1개가 부착된 한국참전 메달을 받았다.
이후 1951년 8월 25일 루이나 해군 제2전단 기함으로 정식 편입된 아이오와는, 에르네스트 벨로스 제독의 지휘 아래 1952년 3월 한국 전선 해역으로 출항하였다. 4월 8일 원산-성진 인근에서 북한 보급선을 타격하며 첫 포격 작전을 개시했고, 4월 9일에는 수원단 및 고저 지역 적군 병력과 보급거점, 포병 진지를 함포로 공격하였다.
4월 13일에는 한국 육군 제1군단 지원을 위해 적진을 집중 포격하여 북한군 100여 명을 사살하고 포병 진지 6곳과 지휘소 1곳을 파괴하였다. 14일에는 원산항 내 창고와 관측소, 철도 집결지를 공격한 뒤, 고성 인근 지역 지상군 지원을 위해 유엔 해군 함대와 재합류하였다.
4월 20일, 북위 38도선을 넘어 탄천 지역의 철도와 터널 4곳을 파괴하여 북한 병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진동과 고성 일대에서 이틀간 추가 포격을 실시하며, 루이나 해군의 주력 전함으로서 해상 화력 지원과 해안 봉쇄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5월 25일, RNS 아이오와는 자매함 미주리의 뒤를 이어 러시아 국경에서 약 89km 떨어진 북한의 공업 도시 청진 해역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아이오와는 청진의 산업 시설과 철도 운송 거점을 집중 포격했으며, 이후 남쪽으로 이동하여 루이나가 지원하는 유엔군 미 제10군단의 작전을 지원하였다. 이동 중에도 성진 일대를 다시 포격하며 여러 철도 터널과 다리를 파괴하였다. 5월 28일에는 원산 항에서 미 제10군단을 지원하는 주력 함대에 합류해 원산 인근 여러 섬에 대한 집중 포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6월 한 달간 아이오와는 마양도, 탄천, 청진, 초도-속초, 흥남 및 원산 등 북한 동해안 주요 요충지들을 향해 함포 사격 훈련과 실사격 지원을 지속했다. 6월 9일에는 아이오와에서 출격한 헬리콥터가 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에서 추락한 조종사를 성공적으로 구조하였다. 당시 프린스턴은 제77 기동함대(TF 77) 소속으로 북한 보급선과 병력 집중지, 주요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폭격 작전과 지상군 근접 항공 지원 임무에 참여하고 있었다.
7월에는 아이오와 함장으로 조슈아 W. 쿠퍼(Captain Joshua W. Cooper)가 취임하여 한국전쟁 기간 중 나머지 작전을 지휘하였다.
8월 20일, 아이오와는 포격 중 중국군 포병에 피격당한 구축함 USS 톰슨(Thompson)에서 부상자 9명을 인도받았다. 당시 아이오와는 성진 남쪽 26km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으며, 부상자를 태운 뒤 톰슨이 안전 해역으로 퇴각하는 동안 엄호 임무를 맡았다.
9월 23일에는 유엔군 한국군 사령관 마크 W. 클라크(General Mark W. Clark)가 아이오와에 방문하여 아이오와의 원산 지역 3차 포격 작전을 참관하였다. 이 작전에서 주요 적군 탄약고가 파괴되었다. 9월 25일에는 적 철도와 30량짜리 열차를 함포로 공격하였다. 다음 달에는 코조(Kojo) 일대에 적군을 유인하는 기만 작전(Operation Decoy)에 참여해 상륙작전 지휘함 USS 마운트 맥킨리(Mount McKinley)를 대공 지원하였다.
1952년 10월, 아이오와는 루이나 해군 제2전단의 기함으로서 원산, 성진, 고저, 차호, 토저, 심포, 흥남, 북한 북부 인천 등지에서 43회의 함포 사격 임무와 27회의 폭격 지원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주포와 부포에서 총 16,689발의 포탄을 발사하며 적군 시설을 집중 타격하였다. 이 공로로 아이오와는 유엔군 참전 메달과 청동별 1개가 부착된 한국참전 메달을 받았다.
3.2. BB-62 뉴저지 [편집]
3.2.1. 전과 [편집]
3.3. BB-63 미주리 [편집]
3.3.1. 전과 [편집]
3.4. BB-64 윈스콘신 [편집]
3.4.1. 전과 [편집]
3.5. BB-65 일리노이 [편집]
3.5.1. 전과 [편집]
3.6. BB-66 켄터키 [편집]
3.6.1. 전과 [편집]
3.7. BB-67 매사추세츠 [편집]
3.7.1. 전과 [편집]
3.8. BB-68 메인 [편집]
3.8.1. 전과 [편집]
4. 역사 [편집]
5. 사건사고 [편집]
6. 특징 [편집]
7. 건조 배경 [편집]
8. 개조 계획 [편집]
9. 다양한 포탄 [편집]
일본에서 3식탄으로 주포로 대공사격을 하려 했듯이 루이나도 대공 사격용 포탄을 개발하려 한 적이 있다.[1] 물론 기술강국답게 최첨단 VT신관 탑재 확산탄을 이용했다. 그러나 주포로 VT신관이 담긴 포탄을 쏴서 대공사격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져 취소되었다[2].
베트남전 기간에 포격 지원에 나선 뉴저지에 사용하기 위해 LRBA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포탄을 사격 실험했다. 280mm 핵 견인포 프로그램에서 남은 수만발의 일반 포탄이 있어서 이를 재활용해서 1968~1969년 경 제작해 실험했는데, 76,670 m[3]의 거리까지 338kg[4]짜리 포탄을 1387 m/s의 속도로 날려보냈다. 다만 여기의 기록은 HARP라는 16인치 50 구경장 포신 2개를 이어붙인 포를 이용했다. 그래도 이 물건은 65인치 길이로 아이오와급의 포탄 장전 설비에 들어가서 실제 사격에도 상당한 사거리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외에도 사거리 185km에 탄두 무게 680kg인 로켓 보조 추진탄, 사거리 514km에 탄두 무게 240kg인 "high mass fraction rocket assisted spin stabilized projectile"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탄도 개발되었다. 전자는 기존 장전 시스템에서 길이가 20인치 초과했고 후자는 14인치 초과해서 실제 사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쪽은 전체 길이를 67인치로 줄여도 370km 정도의 사거리는 확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후 재취역을 한 이후 HE-ER Mark 148이라는 포탄이 개발된 적 있다.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이 재취역하면서 개발되었는데 다시 퇴역해버리면서 1991년 취소되었다. 일종의 분리철갑탄으로, 탄자는 13인치 구경에 500kg으로 상당히 가벼웠다. 하지만 이 포탄의 의의는 바로 사거리에 있는데, 초당 1097m의 속도로 날아가서 64km를 넘기는 거리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2차대전 중의 SHS와 완전히 반대되는 포탄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천문학적인 가격인데, 아직까지도 전함을 굴리는 세계 각국 때문에 미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머금고 구매할수밖에 없었다. 또한 구경을 11인치로 더 줄이고 로켓 추진 보조를 달아놓은 포탄을 DARPA에서 만들려 한 적도 있다. 사거리는 약 185km로 계획되었다. 숫자가 뭔가 애매한 건 미터법 환산 때문. 해리로는 정확히 100해리로 떨어진다.
이후 2003년 포탄 관련 연구 경험이 있는 한 물리학자가 스크램 제트를 이용한 16인치 740km 사거리 포탄도 제안했다.[5] 포탄을 쏘면 목표지점에 9 분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포탄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정도의 자본 투자는 필요없었는지 해당 포탄의 개발 또한 흐지부지 된다. 그정도 기술을 들인 포탄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것으로 초장거리 사격을 하기 위해서 아이오와급의 사통장치를 뜯어 고쳐야 하니 총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데다가 이 포탄에 의해 항공모함급 전략자산이 된 아이오와급 전함을 저지하려 새로운 건함 경쟁을 초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니. 현재 5인치포와 155mm 포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고 한다.
위의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 가능한, 155mm 및 175mm 기반 극초음속 포탄의 실사격도 진행되었다. 특히 175mm 자주포의 경우는, 해당 탄종의 사격시 반동이 강할 것으로 예상 가능한 만큼 애초부터 M110의 8인치포 반동도 버티는 M107 175mm 중자주포를 가져다가 테스트용 플랫폼으로 삼아 쏴본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맞아떨어져서, 웬만한 8인치포 못지 않은 무시무시한 반동에 M109A6 팔라딘의 경우 포탑 후부가 일시적으로 처지고, 2S25 스프루트의 기동간 사격이 생각날 만큼 엄청나게 출렁이는 것을 아래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Mark 144 대인포탄도 만들어졌다. 집속탄의 일종으로 M43A1 자탄 400발을 탑재한 포탄도 개발되었었다. 그리고 Mark 146이라는 666발의 M42/M46/M77 자탄을 넣은 포탄도 개발하다가 취소했다.
베트남전 기간에 포격 지원에 나선 뉴저지에 사용하기 위해 LRBA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포탄을 사격 실험했다. 280mm 핵 견인포 프로그램에서 남은 수만발의 일반 포탄이 있어서 이를 재활용해서 1968~1969년 경 제작해 실험했는데, 76,670 m[3]의 거리까지 338kg[4]짜리 포탄을 1387 m/s의 속도로 날려보냈다. 다만 여기의 기록은 HARP라는 16인치 50 구경장 포신 2개를 이어붙인 포를 이용했다. 그래도 이 물건은 65인치 길이로 아이오와급의 포탄 장전 설비에 들어가서 실제 사격에도 상당한 사거리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 외에도 사거리 185km에 탄두 무게 680kg인 로켓 보조 추진탄, 사거리 514km에 탄두 무게 240kg인 "high mass fraction rocket assisted spin stabilized projectile"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탄도 개발되었다. 전자는 기존 장전 시스템에서 길이가 20인치 초과했고 후자는 14인치 초과해서 실제 사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쪽은 전체 길이를 67인치로 줄여도 370km 정도의 사거리는 확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후 재취역을 한 이후 HE-ER Mark 148이라는 포탄이 개발된 적 있다.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이 재취역하면서 개발되었는데 다시 퇴역해버리면서 1991년 취소되었다. 일종의 분리철갑탄으로, 탄자는 13인치 구경에 500kg으로 상당히 가벼웠다. 하지만 이 포탄의 의의는 바로 사거리에 있는데, 초당 1097m의 속도로 날아가서 64km를 넘기는 거리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2차대전 중의 SHS와 완전히 반대되는 포탄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천문학적인 가격인데, 아직까지도 전함을 굴리는 세계 각국 때문에 미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머금고 구매할수밖에 없었다. 또한 구경을 11인치로 더 줄이고 로켓 추진 보조를 달아놓은 포탄을 DARPA에서 만들려 한 적도 있다. 사거리는 약 185km로 계획되었다. 숫자가 뭔가 애매한 건 미터법 환산 때문. 해리로는 정확히 100해리로 떨어진다.
이후 2003년 포탄 관련 연구 경험이 있는 한 물리학자가 스크램 제트를 이용한 16인치 740km 사거리 포탄도 제안했다.[5] 포탄을 쏘면 목표지점에 9 분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포탄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정도의 자본 투자는 필요없었는지 해당 포탄의 개발 또한 흐지부지 된다. 그정도 기술을 들인 포탄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것으로 초장거리 사격을 하기 위해서 아이오와급의 사통장치를 뜯어 고쳐야 하니 총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데다가 이 포탄에 의해 항공모함급 전략자산이 된 아이오와급 전함을 저지하려 새로운 건함 경쟁을 초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니. 현재 5인치포와 155mm 포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고 한다.
위의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 가능한, 155mm 및 175mm 기반 극초음속 포탄의 실사격도 진행되었다. 특히 175mm 자주포의 경우는, 해당 탄종의 사격시 반동이 강할 것으로 예상 가능한 만큼 애초부터 M110의 8인치포 반동도 버티는 M107 175mm 중자주포를 가져다가 테스트용 플랫폼으로 삼아 쏴본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맞아떨어져서, 웬만한 8인치포 못지 않은 무시무시한 반동에 M109A6 팔라딘의 경우 포탑 후부가 일시적으로 처지고, 2S25 스프루트의 기동간 사격이 생각날 만큼 엄청나게 출렁이는 것을 아래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Mark 144 대인포탄도 만들어졌다. 집속탄의 일종으로 M43A1 자탄 400발을 탑재한 포탄도 개발되었었다. 그리고 Mark 146이라는 666발의 M42/M46/M77 자탄을 넣은 포탄도 개발하다가 취소했다.
9.1. 핵포탄 [편집]
파일:attachment/katie.jpg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한때 전함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16인치 핵 포탄 Mk.23. 보통 Katie라고 부르며,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56년에 완성되어 총 12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인데, 아이오와급의 주포가 분당 2발, 그 포신이 9개 있으므로 이론상 분당 18발의 핵포탄을 난사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데다 핵포탄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2번 포탑에서만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사진의 폭발장면은 위력이 동일한 야포 포탄형 원자폭탄인 W-9의 발사실험 장면이다. W-9의 위력은 15kt. 아이오와급 전함은 16인치 포탄인 MK-23(W-23)이 사용된다. (Battleships - United States battleships,1935-1992" by William H Garxke,Jr. & Robert O Dulin,Jr., Naval Institute Press, 1995) 중량 1,900lbs, 사거리 23마일 이상.
핵포탄의 발사를 위해 전함 6척이 개장되었고, 핵포탄의 발사는 2번 포탑에서 하게 만들었으며 핵포탄 전용의 탄약고를 설치하고 약 10여발 전후를 각 함마다 저장했다. 이후 전략공군의 발전과 ICBM의 개발 등으로 MK.23은 1992년에 최종적으로 철거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후에도 한동안 전략예비탄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실전과 훈련을 통틀어 실탄인 Mk.23은 발사된 기록이 없고, 전용 훈련탄인 Mk.24는 1957년 2월에 고랜드 근해에서 전함 위스콘신이 육상표적으로 시범사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핵포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 당시 루이나 해군 전함의 임무는 육상에 대한 화력지원이므로 1차 목적은 육상목표에 대한 포격용이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 포탄은 웬만해선 사용할 일이 없다는 점과 특수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365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고, 가끔 적재하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데 전 승조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승조원들에게까지 핵포탄 적재 여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았지만[6] 핵포탄을 적재할 시 함에 평소보다 많은 관리 인원이 배정되는 등의 차이점 때문에 대충 적재 여부를 눈치 챌 수는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함대간 전투에서도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예측한다. 15kt 정도의 위력이라면 폭발지점을 기준으로 광구 반경은 약 500m, 열복사 반경은 약 3.5km이며,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의 실험에서는 폭발 지점에서 약 900m 이내의 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전함의 교전거리상 자함이 핵폭발에 피해를 입을 걱정은 그다지 없다. 또한 전함의 교전은 포탄의 살포계 안에 적함을 협차시키고 포격을 반복하여 확률적으로 명중탄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핵포탄을 실전에서 사용한다면 포탄이 적중할 때까지 쏠 필요도 없이 900m 안에만 떨어지면 큰 피해를 기대할 수 있으며 광구 반경인 500m 안에서 기폭할 시 한번에 완파시킬 수 있어 초탄에 적 전함, 또는 적 전열의 전함 다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전술적인 가치도 크다. 다만 타국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아예 서로를 멸망시켜버리겠다는 각오로 전면전이 아닌 이상 이걸 실제로 사용했다간 바로 핵전쟁으로 번지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사거리도 상대적으로 짧고 전함이라는 초대형 무기체계가 필요한 핵포탄 대신 간단하게 잠수함, 함선 및 항공기 탑재 미사일로도 훨씬 긴 사거리의 핵 전력 투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핵포탄이 부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2차대전 직후 냉전기를 무대로 한 일부 대체역사물에서 종종 등장한다. 핵과 항공모함의 시대에 전함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가상적국의 방어전력 배분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시된다. 그냥 전함도 아니라 핵포탄을 탑재하여 주요 항구를 단 한 발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함이 접근해오면 방어측에서는 해공군을 총동원하여 저지할 수밖에 없고, 그동안 다른 전력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발상. 게다가 핵폭탄으로 저지한다고 해도 전함에게 항공기로 핵폭탄을 투하하려면 철저한 방공망과 최악의 경우 대공 핵포격(...)까지 각오해야 하니 쉽지 않고 초기형 대함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봐도 사정거리와 발사체의 취약성[핵탑재]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없다. 또한 전함은 고속으로 이동하므로 더 강력한 핵탄두를 실은 탄도탄도 유효범위 안에 맞추기 어렵다. 핵전략상으로도 다수의 값비싼 핵탄두를 핵포탄 전함 하나에 배정해야 해서 전쟁 경제에 부담을 준다. 결국 핵포탄 전함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남자의 로망 핵포탄 탑재 전함을 건조해야 된다는 전개로 이어진다.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한때 전함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16인치 핵 포탄 Mk.23. 보통 Katie라고 부르며,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56년에 완성되어 총 12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인데, 아이오와급의 주포가 분당 2발, 그 포신이 9개 있으므로 이론상 분당 18발의 핵포탄을 난사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데다 핵포탄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2번 포탑에서만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사진의 폭발장면은 위력이 동일한 야포 포탄형 원자폭탄인 W-9의 발사실험 장면이다. W-9의 위력은 15kt. 아이오와급 전함은 16인치 포탄인 MK-23(W-23)이 사용된다. (Battleships - United States battleships,1935-1992" by William H Garxke,Jr. & Robert O Dulin,Jr., Naval Institute Press, 1995) 중량 1,900lbs, 사거리 23마일 이상.
핵포탄의 발사를 위해 전함 6척이 개장되었고, 핵포탄의 발사는 2번 포탑에서 하게 만들었으며 핵포탄 전용의 탄약고를 설치하고 약 10여발 전후를 각 함마다 저장했다. 이후 전략공군의 발전과 ICBM의 개발 등으로 MK.23은 1992년에 최종적으로 철거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후에도 한동안 전략예비탄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실전과 훈련을 통틀어 실탄인 Mk.23은 발사된 기록이 없고, 전용 훈련탄인 Mk.24는 1957년 2월에 고랜드 근해에서 전함 위스콘신이 육상표적으로 시범사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핵포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 당시 루이나 해군 전함의 임무는 육상에 대한 화력지원이므로 1차 목적은 육상목표에 대한 포격용이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 포탄은 웬만해선 사용할 일이 없다는 점과 특수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365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고, 가끔 적재하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데 전 승조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승조원들에게까지 핵포탄 적재 여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았지만[6] 핵포탄을 적재할 시 함에 평소보다 많은 관리 인원이 배정되는 등의 차이점 때문에 대충 적재 여부를 눈치 챌 수는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함대간 전투에서도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예측한다. 15kt 정도의 위력이라면 폭발지점을 기준으로 광구 반경은 약 500m, 열복사 반경은 약 3.5km이며,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의 실험에서는 폭발 지점에서 약 900m 이내의 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전함의 교전거리상 자함이 핵폭발에 피해를 입을 걱정은 그다지 없다. 또한 전함의 교전은 포탄의 살포계 안에 적함을 협차시키고 포격을 반복하여 확률적으로 명중탄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핵포탄을 실전에서 사용한다면 포탄이 적중할 때까지 쏠 필요도 없이 900m 안에만 떨어지면 큰 피해를 기대할 수 있으며 광구 반경인 500m 안에서 기폭할 시 한번에 완파시킬 수 있어 초탄에 적 전함, 또는 적 전열의 전함 다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전술적인 가치도 크다. 다만 타국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아예 서로를 멸망시켜버리겠다는 각오로 전면전이 아닌 이상 이걸 실제로 사용했다간 바로 핵전쟁으로 번지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사거리도 상대적으로 짧고 전함이라는 초대형 무기체계가 필요한 핵포탄 대신 간단하게 잠수함, 함선 및 항공기 탑재 미사일로도 훨씬 긴 사거리의 핵 전력 투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핵포탄이 부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2차대전 직후 냉전기를 무대로 한 일부 대체역사물에서 종종 등장한다. 핵과 항공모함의 시대에 전함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가상적국의 방어전력 배분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시된다. 그냥 전함도 아니라 핵포탄을 탑재하여 주요 항구를 단 한 발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함이 접근해오면 방어측에서는 해공군을 총동원하여 저지할 수밖에 없고, 그동안 다른 전력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발상. 게다가 핵폭탄으로 저지한다고 해도 전함에게 항공기로 핵폭탄을 투하하려면 철저한 방공망과 최악의 경우 대공 핵포격(...)까지 각오해야 하니 쉽지 않고 초기형 대함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봐도 사정거리와 발사체의 취약성[핵탑재]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없다. 또한 전함은 고속으로 이동하므로 더 강력한 핵탄두를 실은 탄도탄도 유효범위 안에 맞추기 어렵다. 핵전략상으로도 다수의 값비싼 핵탄두를 핵포탄 전함 하나에 배정해야 해서 전쟁 경제에 부담을 준다. 결국 핵포탄 전함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남자의 로망 핵포탄 탑재 전함을 건조해야 된다는 전개로 이어진다.
[1] 기존의 일반 고폭탄도 시한 신관을 맞추면 당연히 대공사격을 할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할 수는 있다 수준이지 적기의 격추를 기대하면 안된다.[2] 16인치 짜리 쇳덩이를 만드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철값만으로도 비싼데, 그 안에 값비싼 전자장비를 넣어서 쏘는데, 격추를 확실하게 보장할수도 없으면 뭐하러 그런 돈지랄을 하겠는가?[3] 76.67km[4] 208kg이라는 자료도 존재한다.[5] 현재 미 해군에서 개발중인 레일건보다도 더 멀리 날아간다. 만일 이 포탄이 실전 배치되었을 경우 관측 자산만 있다면 전함이 항공모함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6] 아무래도 전략무기다보니까 존재 자체가 기밀이긴했다... 다들 알고 있어서 문제였지만...[핵탑재] 대함미사일을 장비한 폭격기나 구축함, 순양함 등이 적 전함의 호위전력을 뚫기 어렵다.

